밴드 홈페이지를 만들고 남은 질문
지난주에 오랜만에 공연을 했다. 다른 두 직장인 밴드와 함께한 연합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다가, 같이 공연한 한 팀이 밴드 활동을 기록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여줬다.
그걸 보니 우리 밴드도 활동을 남겨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 동안 합주하며 모은 사진과 밴드 활동 내용을 모아, 내 입맛대로 만들어보았다. (비인기곡외판원노동조합 (새 창에서 열림))

취미 밴드
대학생 때 취미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학교생활은 접고 밴드 동아리 생활만 열심이었고 덕분에 졸업 전에는 무수히 많은 재수강을 해야만 했다.
2011년에는 동아리 회장도 맡았다. 당시에는 정말 작은 소모임이었는데 요즘 들리는 소식으로는 중앙 동아리가 돼 매해 신입생만 수백 명인 큰 동아리가 됐다고 한다. 내가 알던 동아리와 같은 곳이 맞나 싶어 기분이 묘하다.
졸업한 뒤에도 대학 선후배들과 직장인 밴드를 이어갔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같이 음악을 즐길 사람은 점점 줄었다. 일과 가정이 생기고, 시간을 맞추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선배들과 하던 밴드를 겨우 연명하듯 이어가다 나도 지쳐서 잠시 쉬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시 직장인 밴드를 하고 있다. 몇 년 동안 같이 합주도 하고 비정기적으로 공연도 하고 있다.
이번에 만든 것을 밴드 멤버들에게 공유하니 한 분이 이렇게 말해주셨다 ㅋㅋㅋ
지금 홈페이지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일흔 팀은 이겼다...!!!!
정말 토큰만 태우면 된다
홈페이지 하나를 그린필드에서 만드는 일은 이제 정말(정말...) 쉬워졌다.
예전 같았으면 주말 이틀을 꼬박 써도 끝내기 어려웠을 텐데... 화면을 어떻게 구성할지 정하고, 컴포넌트를 만들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모바일 화면을 맞출 생각을 하다가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을 것 같다.
코드를 직접 구현하는 일은 이제 확실히 인간의 영역에서 에이전트로 넘어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만들고 싶은 모습을 설명하고, 나온 결과를 보며 계속 방향만 교정했다.
AI 슬롭과 그렇지 않은 것
흔히 말하는 AI 슬롭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르는 것은 뭘까.
명확한 방향과 디렉팅의 유무가 아닐까. 처음 나온 결과물을 보고 불만족스러운 지점을 알아차리고 왜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다시 고친 결과가 원래 의도에 가까워졌는지 판단하는 일이 치열하게 있었는가에 달린 것 아닐까.
농담으로 매일 '딸깍' 한다는 말을 쓰지만 실제론 한 번에 나온 결과물은 거의 그대로 못 쓴다. 어색한 문구를 교정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덜어내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을 알아야 한다. 아직까지는 내가 무언갈 하고 있다. '휴먼 인 더 루프'다.
하지만 내가 했던 디렉팅도 결국 말로 남길 수 있는 규칙이 아닐까? 선호하는 화면 구성, 피하고 싶은 표현, 사진의 배치, 무엇을 두고 무엇을 덜어낼지 같은 기준을 더 구체적으로 명세해두면 다음에는 훨씬 빠르게 비슷한 결과를 한 번에 뽑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AI보다 나을 수 있는 것은 뭘까?
직접 구현하지 않고도 감각을 키울 수 있을까?
그동안 구현에 대한 안목은 직접 만들면서 길렀다. 코드를 쓰고, 망가뜨리고, 고치면서 어떤 구조가 좋은지에 대한 감각을 배웠다. 별로인 화면을 만들고 다듬으면서 무엇이 어색한지도 알게 됐다.
그런데 모든 구현을 에이전트가 맡기 시작하면 앞으로 이 감각을 어떤 방식으로 기를 수 있을까. 결과물을 판단하려면 여전히 안목이 필요한데 정작 그 안목을 만들어주던 과정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명확한 방향을 갖는 법, 결과물을 불만족스럽게 볼 줄 아는 법, 구현하지 않으면서도 안목을 유지하는 법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밴드의 지난 시간을 기록할 공간을 만들며 내가 개발자로 생존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같이 남았다.